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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수 계월 전이다. 내가 갓 빵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폭풍고에 내려가 살 때다.
천산공고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삼절곤을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삼절곤을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삼절곤 하나 가지고 에누리한다?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라?" 대단히 근성있는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이리저리 강강약 강중약 강강강약의 기세로 가며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해서 뼈와 살이 분리 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된다?, 하지만 폭풍은 나의 것이야!"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소인배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라, 난 안팔겠다?"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과도한 재촉은 몸을 둔하게 할뿐이라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럭키짱 만화책이나 실컷보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삼절곤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삼절곤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배짱없는 소인배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학교에 와서 삼절곤을 내놨더니 방사형은 적절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학교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방사형의 설명을 들어 보니, 사슬이 너무 길면 동전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사슬이 너무 짧으면 동전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무기(武器)는 혹 날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무기는 날이 한 번 상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무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쇠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풀무질이라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재료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풀무질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패싸움 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용병들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전국구 서열의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전국구란 복대정도는 기본으로 가지고 다니는 자들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복대를 감았는지,붕대를 감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근성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복대를 감을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싸움을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남자다운 싸움을 한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패싸움을 해냈다. 이 삼절곤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대협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김성모 스타크래프트 13권 전질 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삼절곤을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육체는 단명하나 근성은 영원한것.대류..폭룡이 최고다' 마계대전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나도하가 동전을 던지고 있었다. 전에 동전 세개를 삼절곤으로 방아붕 두들겨서 튕겨냈던 생각이 난다. 삼절곤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싸움질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삼절필살기니 코브라 권법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수계월 전 삼절곤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